"'진주' 속 숨은 보석 찾아 무장애 여행 브랜드 만들었죠"
"'진주' 속 숨은 보석 찾아 무장애 여행 브랜드 만들었죠"
여행사 '아름다운동행', '폴링인진주' 양정숙 대표 인터뷰
진주를 여행으로 풀어내고, 지역의 가치를 콘텐츠로 바꾸는 이가 있다.
무장애 여행 콘텐츠를 기반으로 로컬여행 브랜드 '폴링 인 진주(Falling in Jinju)'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동행 양정숙 대표다.
▲‘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의 얼굴 아름다운동행 양정숙 대표‘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의 얼굴 아름다운동행 양정숙 대표 ⓒ
양 대표는 단순한 관광 상품을 넘어 '사람을 잇는 여행', '사람이 힘이 되는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진주성을 배경으로 한 공연형 도보투어, 호롱불을 들고 걷는 야간여행... 그 중심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갈 수 있는 여행", "지역이 곧 콘텐츠"라는 철학이 있다.
그는 50년을 진주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여행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여행업에 발을 들였고, 지난 20여 년간 해외 봉사, 국제회의, 청소년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해외여행과 대행 이벤트 행사를 기획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작 내가 사는 진주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거죠. 외지인은 감탄하는 진주의 풍경이 저에게는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거예요."
그 후로 그는 진주의 일상 속 풍경과 이야기를 여행 콘텐츠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진주성, 남강, 구도심 골목을 걷는 여행, 지역의 음식과 요리사가 함께하는 프로그램,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도보형 공연과 사진여행까지. 그렇게 로컬여행 브랜드 '폴링 인 진주'가 탄생했다.
친구와 떠난 황매산 여행, 무장애여행의 절실함
양 대표가 '무장애 여행'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황매산 철쭉을 보러 나섰던 어느 날, 보조기를 착용한 지팡이와 휠체어 혼용장애가 있는 친구는 산 입구에 다다르자 한참 머뭇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혼자 다녀와. 난 여기서 기다릴게."
비장애인들에게는 그저 낮은 오르막이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이인데, 차마 그런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순간 양 대표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여행'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잇던 양 대표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왔다.
"비장애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친구에겐 감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내가 만드는 여행이라면, 누구나 함께 갈 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음 먹었어요."
이후 양 대표는 휠체어 사용자이자 동행자인 김태오 이사와 함께 '무장애 여행'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애인', '장애공감 체험여행', '무장애 여행콘서트' 같은 콘텐츠는 장애인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여행을 지향한다.
"무장애 여행은 특별한 대접이 아닙니다. 배려가 아닌 배제되지 않는 동등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여행이죠."
'폴링 인 진주'는 단순한 여행 브랜드를 넘어 진주의 문화와 사람을 엮는 기획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진주성의 지점을 이어가는 공연이 함께하는 도보극장 '스테이지 온 진주'▲진주성의 밤을 호롱불과 함께 걷는 문화융복합여행콘텐츠 '진주성 호롱불 밤마실'▲로컬 셰프와 함께하는 '에스코피에 주방'▲사진작가 유근종과 함께한 '진주 속살여행'▲구도심 골목과 이야기를 담은 '우리동네퐁당여행단 망경동편' ▲진주7대 대표상품선정 가족이 함께하는 진주여행 패밀리 온 진주 ▲중장년 동창모임타켓여행 알리바바와 40인의 동창생들, 여기에 진주야간미식여행 쿡앤톡, 면묵go빵묵go, 진주면식범(진주면식기행) 등 진주 로컬푸드를 활용한 테마 여행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참여자들은 "진주에 와서 그저 스쳐가는 손님이 아니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다정한 환대를 받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야외 중심 프로그램 특성상 기상 변화에 발목 잡혀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예전엔 비가 와도 천막을 치고 무조건 강행했지만, 지금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요. 그래야 오래, 꾸준히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죠."
진주를 넘어 전국으로, 무장애 여행의 새로운 길을 열다
진주시장애인총연합회와의 업무협약, 관광두레 으뜸두레 2년 연속 선정, 2023년 한국관광공사 사장상 여행사부문, 2024년 문화체육부장관상수상 무장애 여행 콘서트 개최 등 양 대표와 '아름다운동행'의 활동은 전국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양 대표는 앞으로는 "고령자나 여행 취약계층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여행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성 무장애 여행‘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성 무장애 여행 ⓒ
그는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시기에도 '진주형 랜선여행', '여행자토크콘서트'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폴링 인 진주' 역시 그 시기에 본격적인 브랜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벤처창업학 과정을 수료한 양 대표는, 현재 문화융복합 디지털문화비즈니스 박사과정에 입학해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더 깊이 배우고 시야를 넓혀야만 이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의 얼굴 아름다운동행 양정숙 대표‘폴링 인 진주’가 만든 새로운 진주의 얼굴 아름다운동행 양정숙 대표 ⓒ 양정숙관련사진보기
"진주는 다정한 도시, 여행은 그 마음을 전하는 일"
양정숙 대표는 여행이 단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지역의 가치를 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주가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따뜻한 시선을 나누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여행을 통해 공감하고 치유받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양 대표의 다음 꿈은 무장애 여행 축제다.
진주에서 출발한 이 소박한 발걸음이 전국 곳곳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도 그는 낯선 여행자의 눈과 특별한 愛人(애인)의 다리로 진주 곳곳을 걷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